가가(김일환)展 <無始無終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2024.07.31 ▶ 2024.10.06
2024.07.31 ▶ 2024.10.06
김일환
신목 2024, mixed media on canvas, 150.5×150.5cm
김일환
(우) 서낭당 2024, mixed media on fabric, wooden box, light bulb, etc, variable size
김일환
고대 2024, acrylic on wood, 105×365×5cm
김일환
(좌) 찔레꽃, 2024, acrylic on wood, light bulb, 179.5×147.5×5cm (우)그늘꽃, 2024, acrylic on wood, light bulb, 118×240×5cm
김일환
조상 2024, acrylic on wood, 120.5×163×5cm
김일환
서낭당 2024, mixed media on fabric, wooden box, light bulb, etc, variable size (상세)
아리랑, 나무 시리즈 등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인 한(恨)을 즐거움과 밝음으로 해석해 온 김일환 작가는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가가’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자 한다. ‘가가’는 ‘그 사람이’ 또는 ‘그것이’ 또는 ‘그가 그린 그림’ 등 다양한 말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경상도 방언이다.
‘나무’라는 하나의 소재 아래 가가는 이번 기억공작소에서 고대로부터 이어진 기원과 소망, 그리고 작업의 시작과 맞닿아 있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오랜 기간 ‘김일환’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활동하며 그가 표현해 온 주제들은 우리 사회,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다. 분해와 해체, 그리고 재조합이라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그가 탄생시킨 작품들은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것들, 특히 무속적인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었다.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것들을 조형적으로 어떻게 나의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작업으로 풀어나가고자 했던 가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간의 평면작업에서 한발 벗어난 설치작업으로 우리 고유의 무속신앙이 깃든 서낭당과 당산나무를 재해석하였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 ‘신목(神木)’이라는 제목의 당산나무 그림이 자리하고 그 옆으로 설치작품 <서낭당>이 자리한다. 길다란 천 조각들에 그려진 나무들이 모이고 겹쳐져 하나의 숲을 이룬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천부경(天符經), 정선아리랑 등의 글을 담은 천과 오방천이 함께 걸리며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낭당 나무 아래 돌탑은 그가 즐겨 쓰는 나무를 재료로 한 나무탑으로 탄생시켰다. 요즘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나무 과일상자의 형태를 재현하여 옛 향수를 재생시키고 친근한 조형미를 담았다. 담음이라는 본래의 쓰임이 사라진 나무 과일상자는 쓰임과 버림이라는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음을 암시하는 소재이다.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 늘 새로운 것을 해보고자 하는 가가의 작업은 겉보기에는 항상 변화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와 작업의 기조가 늘 내재되어 있으며, 전시 제목인 ‘無始無終’처럼 시작도 끝도 없으며, 시작과 끝은 구분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게 한다. 대구미술의 당산목과 같이 한 자리에서 작업에 매진하며, 서로가 화해하고 서로의 안녕을 비는 사회, 소통과 공감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사회를 소망하는 김일환의 작업이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길 희망한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안혜정
전시 평론
김일환 작가의 무시무종적 화론
김일환 선생은 지난 몇 번 개인전의 타이틀을 ‘가가展’으로 작명해 눈길을 끌었다. 왜 스스로 ‘가가’로 불리기를 원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내가’라는 주어에 귀속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주체를 익명화하면서 제3의 인물을 가리키듯 부르고 싶어 한 그의 저의를 궁금해했는데 어떤 심리학적 탐구로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전을 보면서 의문을 덜게 되었다.
지나친 주관화를 경계하고 보편적인 주제를 구현하려는 작가의 조형 의지가 스스로 타자화 내지 객관화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지난 세기 우리 화단에는 모더니즘의 질주 속에 배타적인 작가주의 정신이 팽배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예술 양식에서 무엇보다 우선으로 주체성을 강조하던 시대였음을 기억할 때 그의 표현은 분명 그 반대의 ‘역설’을 담고 있으며 그 이상의 의미를 시사한 것이었으리라.
작가는 지난 시대의 수다한 양식 조류를 체험하면서 하나의 형식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주류들의 바깥에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예술의 내용은 둘째치고 방법과 형식논리를 앞세워 역사적 필연성이나 방향을 주장했던 발언들은 이제 포스트모던을 끝으로 그 어떤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양식적 순수성을 주장하고 작가들을 위계 세우던 그 모든 논리가 해체된 지금 그야말로 진정한 자유 의지를 오히려 불안으로 받아들이는 혼란된 의식 속에서 개인들이 길을 잃을지 모를 시대다.
김일환의 ‘가가’는 분명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고 본다. 주체를 새로운 관계 속에 위치시켜 작가와 예술의 역할을 해방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이번 전시는 반세기 이상의 긴 화력을 돌아보며 그동안 걸어온 긴 여정에 만들어왔던 자신의 예술들을 아주 축약된 형태로 보여주며 세계관적 귀결 같은 인상도 주고 있다.
전시는 봉산문화회관에서 4전시실이라는 작지만 독특한 공간에서 설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평면 1점을 포함해 회화적인 작품 4점과 오브제 설치 및 조각 작품 등 모두 7점을 진열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서부터 수집한 나무 인형 4점으로 구성한 〈꼭두상〉(2024)이 먼저 관객을 맞는다. 민속품으로 보이는 남녀 인형 4점을 고서(古書)의 책장을 붙여 만든 상자 안에 각각 넣어 만든 형태로 전시의 첫머리에 배치하면서 도입부로 삼았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가면서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있고 첫 번째 벽면에 건 작품이 그동안 자주 다루어왔던 ‘나무’ 모티프를 캔버스에 아크릴로 옮긴 〈신목〉(2024)이다.
작가에게 페인팅은 일찍이 아카데믹한 구상에서부터 시작하여 팝아트와 하이퍼리얼리즘에서의 사실적인 표현과 그리고 비구상 회화까지 여러 양식을 거치면서 가장 오랫동안 취급했던 매체이었다. 후기에 와서 자유롭고 능란한 필획으로 표현주의적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바탕은 캔버스에서 패널, 패브릭 등 다양하다. 이 작품 〈신목〉에서 보이는 표현상의 특징은 화면 구성에서 더욱 늘어난 여백과 금분을 쓴 채색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톤이 작가의 주제적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맞은편 벽에는 가로로 긴 대작 한 점을 배치했는데 〈고대〉(2024)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아득한 옛날 인류의 시원을 나뭇가지 오브제들과 기호화된 암각화 그림 등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매체는 캔버스 대신 쪽 널로 짜서 만든 송판을 사용했다. 인류의 먼 조상들의 삶이 흔적으로 기록되거나 상징적인 기호와 오브제들로 암시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의 사이, 이 전시실의 맨 안쪽에는 〈서낭당〉(2024)을 설치했다. 천정에서부터 색색의 천으로 된 주련을 내려뜨려 벽면으로부터 공간을 조성하고 바닥에서부터 나무상자를 쌓아 올려 단을 만든 위에 불상 1구를 앉혀놓았다. 그리고 최상단은 조상신의 상징이라는 신물을 그 아래에는 정화수 그릇을 놓아 무속 신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런 오브제들의 선택에 작가의 진심이 가 있으며 소재 하나하나가 다 김일환 예술의 모티프들이고 메타포들임이 분명하다.
한발 물러서서 전시실을 둘러보면 마치 작가를 위해 만든 작은 채플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제단 같은 안벽 장식은 성소를 연상시키며 좌우의 작품들은 그동안 펼쳐온 작품세계를 소박하고 겸허한 자세로 요약하듯 사방 벽을 장식하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벽면들에서는 이 전시실의 이름이 기억공작소이듯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들을 소환한다. 〈찔레꽃〉, 〈그늘꽃〉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상〉을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그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눈부신 봄날의 꽃비로 또는 밤의 정취로 내리던 순간들을 또한 그늘에 피는 꽃들을 내다보면서 겪었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며 지극히 사적인 기억에 저장되었던, 아련한 추억들을 길어 올려 찰나의 순간들을 현현하게 한다.
이상의 7점을 관철하는 공통된 조형적 요소는 우선 모든 작품의 주제에 민속적 서사가 바탕에 있으며 모티프에 나무와 같은 자연이 있음을 느낀다. 매체의 양식을 보면 아크릴로 캔버스 위에 그린 나무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 나무의 오브제로 구성된 작품들이다. 나무라는 자연의 상징이 김일환 예술의 가장 근간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나무로 된 상자와 종이, 패브릭 그 외 조명이 더해져 점멸하는 빛의 효과를 위해 장치를 부가시켰다.
작가는 이 전시의 타이틀을 무시무종으로 붙이면서 자연의 순환이나 예술(양식) 역시 시작도 끝도 없으며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미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작가는 자신의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며 얻은 깨달음을 미래의 예술에 적용하고자 한다. 지금도 늘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싶다는 원로 작가의 욕망, 용기 있게 실현해 나가시기를 격려하고 싶다.
■ 미술평론가 김영동
작가 노트
無始無終
시작은 어떤 상황에 대한 출발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시작은 종결의 끝부분이며 동시에 반복 내지 새로운 것을 이어주는 첫 번째 선두의 자리다. 시작은 있다, 이루어진다, 하므로, 하여, 그래서, 그러므로, 그리하여 등의 생각에 의한 행위성의 암시로 기대와 더불어 진취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꿈을 갖게 하면서 잘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시작은 끝이라는 종결에 종속되어 있다. 동시에 끝이라는 본성은 끈질기게 인내하며 시작을 잡아먹기 위하여 항상 종착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끝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어진 허무와 허탈, 비애 등의 비극적인 슬픔을 안고 있으면서 결국에는 종결이 결실, 충만, 보람, 만족 등으로 이어지는 이중성을 갖게 된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그러므로 시작과 끝은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앞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편의상 구별의 방편으로 인식된 개념이다. 고로 無始無終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며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인 것이다. 無는 없다는 것이다. 없다는 것은 있었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과거의 흔적을 암시하는 것이므로 그 또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無는 단순히 없다는 일반론적인 관념에서 떠나 무한대의 포용성을 갖고 있다.
이는 역치성(liminality)의 개념에서 나 자신이 ‘가가’ 가다 라는 나의 견해는 선문답의 無始無終으로 요약하고 싶다. 왜냐하면 서로 이질적인 것들일지라도 극적인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종교적인 차원의 신성한 체험이 공감과 동질성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하고 있던 그림들을 팽개치고 또 다른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꾸짖고 나무라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무분별과 결정장애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자꾸 내가 내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 같다. 끄집어 내어야 되는데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다. 내가 자꾸 나와서 펄펄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생다지, 억지로 내가 내 속에 나를 밀어 넣은 것 같다. “그래 놓고 나오라 칸다고 잘 나올라 카겠나? 아니, 들어가고 나오고도 없이 끄냥 그렇게!” 라고 중얼거리며 오늘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생각은 있으나 시작과 끝을 모르겠다. 행위의 시작과 끝도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메이기 싫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에 집중하고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작품이 갖는 의도성은 큰 틀에서 나무라는 메커니즘(mechanism)이 갖는 조형성에 무게감을 두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평면의 나무그림에서 벗어나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상으로 접촉하여 왔던 나무상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친환경적인 나무의 질감과 사후의 쓰임에 따른 변신과 조형적인 무한한 가능성을 존중한다. 시대성에 의한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흔적들을 좇아 오마주(hommage)적인 차원에서 추적, 재생을 통하여 현실적인 느낌으로 재현하였고 조명을 가미하여 빛에 의한 음양의 논리를 無始無終으로 그 의미를 접목하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담겼고 새겨졌던 과거의 풍요로움이 무관심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색되어 버린 나무상자들의 부활을 모색하였다. 이를테면 지나간 흔적들에 대한 회고적 넋두리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 또한 있다가 사라졌고 사라졌다가 있게 되는 無始無終은 사고적인 측면에서 무위자연의 순리적인 조형성의 창조로 재해석 되길 기대하며 오늘날 현대미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새로운 표현의 논리성에 깊은 애정을 담고자 한다.
천기 5921년 7월 6일 지독한 열대야 속에서 가가
작가 프로필
가가 김일환
가가는 김일환의 예명이다. 가가는 우리의 것에 심취하여 우리의 것을 사랑하며 전통적인 우리의 고유사상과 민속적인 우리의 시원문화를 존중한다. 가가는 가장 나다운 나의 것은 무엇인가에 고심하며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의 피 속에 흐르는 민족의 혼과 얼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주로 한국적인 풍물들을 주제로 여러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표현하였고, 1990년대와 2000년 초반에는 새로운 조형성의 시도와 더불어 동양의 근본사상인 음양오행설을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2013년부터 아리랑을 그리다, 2018년 아리랑을 품다, 2019년 아리랑을 노래하다 라는 주제로 아리랑이 갖는 우리의 한을 당산나무에 접목하여 표현하였다. 2023년에는 가가展이라는 타이틀의 전시에서 나무가 갖는 최소한의 골격을 찾아 단순화된 조형언어로 마음그림이라 칭하였다.
2024년 올해의 작품은 우리의 얼을 되새겨 보자는 염원에서 아리랑의 큰 울타리 속에 우리의 고유문화를 찾아 원시반본적인 차원에서 고대와 조상, 그리고 당나무와 서낭당의 이미지를 나무상자를 재료로 한 설치작업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여세동보 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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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광주비엔날레 기념특별전 《시천여민 侍天與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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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 2024.12.01
무등: 고요한 긴장 Equity: Peaceful S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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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두개의 노래 Two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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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르코미술관 × 레지던시 해외작가 초대전 《나의 벗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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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물방울, 찬란한 순간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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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스크리닝 《플라스틱 풍경》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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