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응 Correspondences
2024.09.10 ▶ 2024.10.25
2024.09.10 ▶ 2024.10.25
전시 포스터
안민환
캔버스, 좌대, 조각(세부) 나무에 페인트, 240×360×732cm, 2024
정원
남겨진 것_00 해조, 우뭇가사리, 전분, 폐천막, 모래, 지름 40cm, 2023
홍자영
The Gate of Wind and Water(세부) 타일, 왁스, 아크릴, 200×160cm, 각 40×40cm(×12), 2023
자연은 하나의 사원(寺院)이니 거기서
산 기둥들이 때로 혼돈한 말을 새어 보내니,
사람은 친밀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리로 들어간다
어둠처럼 광명처럼 광활하며
컴컴하고도 깊은 통일 속에
멀리서 혼합되는 긴 메아리들처럼
향(香)과 색(色)과 음향이 서로 응답한다
어린이 살처럼 싱싱한 향기, 목적(木笛)처럼
아늑한 향기, 목장처럼 초록의 향기 있고,
ㅡ 그밖에도 썩은 풍성하고 기승한 냄새들,
정신과 육감의 앙양(昻揚)을 노래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의 확산력 지닌 향기도 있다
상응,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57
풍경(風景)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풍경이라는 한자를 풀어 쓰면 바람(風)과 볕(景)이라는 글자들로 나뉘기에, 바람과 볕 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풍경이 될 수 있다. 자연이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생명체를 받아내고 어느 것과도 마찰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풍경이라는 단어 자체도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바람과 볕이라는, 시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현상 자체를 사람들은 풍경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풍경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자세히 봐야 하는 지점은 바로 풍경의 ‘景’이라는 글자에 있는데, 이 단어는 日(해 일)자와 京(서울 경)이라는 글자가 결합된 글자이다. 여기서 ‘京’자는 높은 건물을 의미하기에, ‘景’자는 높은 건물 위로 햇볕이 내리쬐어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풍경이라는 단어는 바람이 불고 볕이 내리쬐는 높은 곳의 모습이라는 속뜻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풍경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높은 곳을 내리쬐는 햇볕을 ‘바라보는’ 사람이 존재하였기에 단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즉 풍경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풍경’ 자체가 그 상태 자체를 풍경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것을 바라보고 감화된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의 정신을 거쳐 나온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풍경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과는 다르고,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간의 관점과 생각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풍경은 혼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 안에 존재하며, 상호적이고 평행한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
전시의 제목 ‘상응’은 1857년에 쓰여진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상응(Correspondences)’이라는 상징주의 시에서 가져왔다. 이 시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상호 상응을 이야기하는데, 물질세계를 뜻하는 자연은 상징의 세계로, 인간의 감각은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드러내기 위해 상응하며 정신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상응을 해석하는 시인의 역할이 드러난다. 명확하지 않은, 상징으로 무수하게 연결되는 자연의 숨은 이치들을 시인은 감지하고 자연에 들어가 그들의 응답을 확인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로 번역한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온 시인의 역할은 미술을 하는 작가의 역할과도 같다. 본 전시에 함께 하는 안민환, 정원, 홍자영 작가는 그들만의 한 차례의 번역을 통해 자연을 미술로 끌어들여 풍경을 만들고, 풍경에 대해 궁리한 것들을 조각, 설치, 판화,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자연과 작가 본인 사이에서 공감각으로 존재하는 어렴풋한 시공간의 감각들을 응시하고, 마주한 자연의 모습을 하나의 풍경으로 작업에 가져온다. 이들의 작품은 가끔은 흡습한 모습처럼 뿌옇고 정확하지 않은, 우리의 삶이 진행되지만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공간의 한 지점을 상상하게 한다. 안민환, 정원, 홍자영은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에 이입되고, 자연에 들어가서 그들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풍경을 만든다. 그것은 유토피아적일 수도, 현실적일 수도, 그저 감각적인 느낌으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풍경을 통해서 우리는 존재하는 풍경을 새롭게 응시할 수 있는 감각을 배운다.
안민환은 입체와 평면을 가로지르는 방법과 그 과정의 변모에 관심을 둔다. 다듬어지기 이전 단계에 있는 매체의 시작점의 모습과 열린 결과물을 상상하게 하는 과정적 모습들을 작품에서 동시에 나타내며, 지시된 방향성 없이 무한히 변형될 수 있는 기능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조각은 평면으로, 평면은 조각으로 변화하는 흐름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이며, 그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틈새와 여백을 통해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지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정원은 소외되고 바깥으로 밀려난 것에 관심을 가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것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는 이렇게 잊혀지는 것들이 쌓이고 퇴적되어 만든 섬을 관찰한다. 바다와 땅의 부산물들과 흔적들은 정원의 작업 안에서 다른 부산물들과 만나 또 다른 울림이 있는 섬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바다에서 만난 다양한 부산물들과 저수지에서 만난 흔적들을 가지고 그것들이 얽혀져 만들어 낸 풍경을 보여주고자 한다.
홍자영은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이 녹아있는 정원과 과거의 놀이 방식을 관찰한다. 또한 경계를 만들면서도 경계 자체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현상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감각을 인지하게 하는 프레임에 관심을 둔다. 자연은 보는 사람의 시각적 프레임을 통해 각각 내밀한 다름의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 홍자영은 안팎이 연결되면서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조각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관에 대한 섬세한 시각적 관찰을 시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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