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슬
From the series I know Digital pigment print, 120x240cm, 2010
이다슬
From the series I know Digital pigment print, 80x100cm, 2010
이다슬
From the series I know Digital pigment print, 100x130cm, 2010
이다슬
From the series I know Digital pigment print, 110x155cm, 2010
멈춘 시간에서 바라본 자연과 인간 속도 - 이대범(미술평론가)
불일치
자연의 속도는 일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을 가만 두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정한 속도에 답답함을 느끼는 인간은 자연의 속도를 과학기술의 도움을 통해 끊임없이 변형하고자 한다. 이러한 태도의 기저에는 타인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린다. 누구나 일정한 자연의 속도에 순응하다보면, 비슷비슷한 결과를 얻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일정한 속도를 거부해야만 한다. 이러한 논리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일정한 속도를 지닌 자연에 최단, 최고, 최대 등의 최상급의 형용사를 부여하며 자연의 속도를 인간의 욕망의 속도에 맞춰 조절한다. 당연지사 인간은 자연이 제공하는 생산과 소비의 일정한 패턴을 거부하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대변되는 '투기'를 이끌어냈다. 한 순간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최우선 과제로 여겨졌다. 분명 이러한 태도는 인간 사회에 '빠른 성장'이라는 (긍정적이건 혹은 부정적이건) 선물을 선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이 자아낸 과도한 속도만큼 자연을 곤핍하게 만들었다.
석탄
이다슬은 자연의 속도와 인간의 속도가 불일치하는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는 한 도시를 찾아간다. 그곳은 마치 시계 바늘이 없는 듯 멈춰있다.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집은 숲처럼 풀이 우거져 그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다. 그곳에 사람이 사는지조차 알 수 없다. 시내 역시 사람이 없으며, 차도 없다. 그곳에는 시내를 관통하는 협궤 선로만이 있을 뿐이다. 시선을 돌려보자. 푸른 하늘은 갱도 줄이 가르고 있으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은 붉은 색이며, 폐 석탄으로 생긴 인공 산에는 비현실적인 나무들이 자란다. 현재 기이하고 낯선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카지노를 찾은 수많은 차량이다. 과거의 상징적 기표들은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이지만, '자국'으로 남아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현재의 시간에 끊임없이 개입한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 공간에도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러기에 그의 작업에 드리운 멈춤이 '모든 과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과거의 수많은 시간 중 어느 시점에서 멈춰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의 작업에서 가시적인 공통점은 '석탄'이다. 석탄은 산업화 이후 인간 속도 가속화에 큰 역할을 했음은 자명하다. 이로 인해 자연을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곤핍함을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현재는 석탄 가치가 상실됐다. 그렇다고 인간의 욕망의 속도가 멈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의 속도를 가속화 시킬 또 다른 것을 찾아 대체했다. 석탄은 인간에게 버림 받고 이제는 자연의 속도에 순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는 석탄 산업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는 석탄 자체보다는 석탄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의 충돌'이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비가시적 세계
석탄의 가치는 변했으며, 이에 그를 둘러싼 공간 역시 변했다. 가시적인 눈으로 '현재'를 보자면, 이 공간은 낯설고 기이한 이미지가 중첩된 공간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과거'에 방점을 두고 이 공간에서 아련한 향수를 자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다슬은 이 지점 모두를 회피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시간대를 병치 시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비가시적인 세계를 목도하게 한다. 즉, 그는 이 공간에 "과연 실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의 바탕에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드러나는 데, 그것은 시간이 선형적으로 전개된다는 것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다. 이다슬은 이번 작업에서 한 때는 자연의 속도를 거스르며 인간의 속도를 가속화 시켰지만, 현재는 잊힐 위기에 처해 있는 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마치 그것들이 가야 할 자리에 배치하는 듯하다. 그의 사진 속에서 석탄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항상 자연에 달라붙어서 등장한다. 왜냐하면 전면에는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인간의 속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과거 시간에 놓인 '석탄'이 아닌 현재와 과거가 충돌하는 순간에서 '인간의 욕망의 속도'를 바라본다. 빠른 변화를 추구하는 이 시간에도 그의 시선은 느리고 섬세하게 손을 뻗어 우리가 보지 못한 비가시적 세계인 자연의 속도와 인간의 속도의 불일치를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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