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만들고 팔고 입고 벗기
2012.05.21 ▶ 2012.05.26
초대일시ㅣ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11:00am
2012.05.21 ▶ 2012.05.26
초대일시ㅣ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11:00am
권경용
이미지의 소비 - 광화문 사진설치 및 퍼포먼스, 자유변형, 2012
로와정
costume 시리즈-(상단) 좌로부터, 로와정 (설치), 정재철 (설치), (하단) 좌로부터, 이남희 (설치), Annet Couwenberg (4채널 영상), 이남희 (설치) 설치 , 2007
장은의
PLAYERS_Player No.2 홍인숙 단채널 비디오, 22분, 2012
‘옷’은 늘 우리의 관심사다. 내일의 날씨를 살펴보며 긴 외투를 꺼내 두기도 하고, 경조사에 맞추어 검은 정장을 입어야 할 때도 있고, 누군가의 옷차림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며,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멋진 점퍼를 사고 싶어서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의 실태가 사회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디자인과 색채를 보고, 가격을 고려하고, 원단의 특성을 살피며, 자주, 가끔, 빨리, 많이, 신중하게 혹은 적절하게, 소비하는 일은 은연중 ‘나’를 드러내는 중요한 선택적 행위가 되었다. 기후, 계절, 의례, 신분, 관계, 성별, 종교, 직업, 경제, 취향, 문화, 그 모든 것의 지표로서 ‘옷’은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그러한 ‘옷’이 예술가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자, 표현의 매개가 된 것은 무릇 자연스럽다. 형태와 색채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제작과정으로서의 옷 (만들기), 상업적 상품이 되어버린 옷을 둘러싼 산업구조와 재활용의 이슈 (팔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 (입기), 옷이라는 껍질 뒤에 숨어있는 참된 나에 대한 각성에 이르기까지 (벗기), 순수 예술가들의 옷에 대한 입장은 패션의 진화 못지않게 다채롭게 진화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이화여자대학교 섬유패션학부의 출범을 축하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의 옷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13명의 작가들이 초청되었으며, 회화, 조각,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 20여 점이 소개된다. 또한 응모에서 선발된 학생 작가 6명도 함께 참여한다. 옷을 주제로, 혹은 옷을 매개로 한 여러 작품들은 순수하고, 정직하게, 또한 위트있게 만들고, 팔고, 입고, 벗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만들기’는 옷의 겉모습을 대상으로 한다. 즉, 옷의 형태와 패턴, 색채와 소재, 구성과 조합의 특성을 포착한다. 옷의 기능과 상식적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떠나, 재미있는 형태실험을 펼쳐 보이는 작품들이다. 김도마는 청바지, 셔츠 등 우리가 매일 입는 평범한 옷을 선택하여 형태를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마치 아무렇게나 벗어 반쯤 뒤집어지고 팔이 거꾸로 끼어진 옷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을 만들어내듯, 실제 의상을 그대로 떠낸 그의 작품은 소재의 리얼리티와 형태의 상상력이 더해져 일상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손문일은 옷의 질감과 주름을 주목하고,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는 등 특정 옷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동작과 형상을 포착한다. 섬세한 사실적인 묘사와 대조되는 과감한 인물생략, 입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면이라는 아이러니는 옷의 형태와 특성을 더욱 주목하게 하고, 대상과 표현, 본질과 재현이라는 작가의 화두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중근은 패턴 디자인처럼 보이는 추상 사진을 제시하는데, 가까이서 바라보면 전통한복을 입은 어린 도령, 혹은 놀이기구를 타는 ‘80년대의 가족사진을 오리고, 재배치하고, 반복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보였던 것이 실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실에서 발췌한 일상의 단편들이라는 사실에서 놀라움과 유머가 발생한다. 게다가 벽지, 옷, 등 무한반복의 패턴으로 제시되는 작품의 놀랍도록 다양한 적용방식은 도상과 장식, 삶과 예술, 만들기와 해체하기의 즐거운 실험을 제시한다. 장은의는 작가의 손을 포착한다. Players 시리즈 중, 홍인숙의 제작과정을 포착한 이번 비디오는 색색의 실로 수놓는 작가의 작업과정을 따라가며, 그리기에서 수놓기로 전환한 작가의 새로운 작업을 소개한다. 천천히 진행되는 한땀 한땀 수 놓는 과정은 지난하고 조용하고 고요하다. 액자소설 속의 주인공의 삶을 훔쳐보듯, 천천히 진행되는 작가의 비밀스런 작업과정을 들여다보는 고요한 순간은 만들기의 숭고함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팔기’는 옷의 산업적 측면을 주목한다. 즉, 옷의 생산과 유통, 판매와 소비, 명품과 마케팅, 재활용과 환경 등 옷을 둘러싼 사회환경 차원의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들이다. 정재철은 7년여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에서 수집한 폐 현수막을 실크로드 상의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고 그것이 타 문화권, 타 지역에서 재활용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기록한다. 광고로서의 유효기간이 지난 폐현수막은 다른 역사와 문화 속에서 텐트, 옷, 가방 등으로 재활용되며 새로운 용도의 생명력을 얻는다. 권경용은 옷의 ‘팔기’와 ‘입기’ 사이를 유영한다. 명승지 전통의복 입어보기 퍼포먼스는 전통이 관광이라는 이름과 결합되며, 이국적 취향을 만족시키는 ‘입어보기 용’ 코스튬이 되어버린 현실을 꼬집는다. 생활의복으로서의 효용을 다한 전통의복은 새로운 관광상품이 되어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본래의 가치는 증발하고, 소비용 이미지(상품)로 대체된다.
‘입기’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로서의 옷을 살펴본다. 직업, 성별, 지위, 연령, 관계, 국적 등 옷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과 관계의 문제를 포착하는 작품들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넷 카우벤베르그는 국가적 유산과 문화적 정체성이 옷이라는 형식 속에 녹아있음을 주목한다. 복잡하고 반복적인 러플 정식의 네덜란드의 카라 디자인은 우연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금욕과 제약에 뿌리내린 네덜란드의 시민성을 표상한다. 판소리 명창의 한복 위에 네덜란드식 카라가 덧붙여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글로벌 시대의 다양한 문화주의와 다중 정체성의 문제를 파고든다. 정강은 카우벤베르그의 지적대로 우연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와 상황의 발현으로 제시된 문화적 표상을 포착한다. 얼굴없는 초상은 옷 만으로 그 신분과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스테레오 타입화된 이미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코 그들의 옷이 제복처럼 신분을 드러내는 공적 의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는 다양하고 평범한 대중을 상징할 수 있는 구체적 물증들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윤미연은 전통 로코코 복장을 한 현대 시대의 여인을, 다시 불교의 33인의 보살의 포즈로 재현해냄으로써 시대와 가치관을 넘나드는 ‘스타일(양식)’의 문제를 추적한다. 문화적 정체성이 혼재된 작품 속에서 다양한 가치관은 복잡하게 얽히며 갈등과 모순을 일으키지만, 그 모든 것들이 또한 공존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임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로와정은 부부작가로서 관계의 문제를 포착한다. 그들은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표현 그대로 하나의 옷을 나눠 입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각자의 육신과 욕망을 그대로 유지하며, 몸의 일부가 맞닿은 한 벌의 의상은 샴쌍둥이의 불편함처럼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사실 이들 부부는 우연히도 생년월일이 같고 성별만 달라, 샴쌍동이와도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벗기’는 겉모습으로서의 옷을 내려놓고, 내면의 나를 치유하고 감싸안는 존재로서의 ‘옷’을 말한다. 뜨개, 짜기, 직조 등의 방식을 통해 낱낱의 실들이 모여 따뜻한 옷감으로 완성되듯, 조직하고, 덮고, 내려놓고, 꿰매고, 붙이는 방식을 통해 ‘옷’과 ‘자아’사이의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들이다. 김혜련의 가위질이 선명한 10미터의 대작은 소설 <토지>를 바탕으로 시작한 ‘절대적 눈물’ 시리즈의 대표작으로, 화면을 오려내고, 해체하고, 다시 꿰매고,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본래적 속성과 아픔의 극복을 형상화한다. 이남희는 돌멩이와 같은 사소하고 시시한 사물들에 니트로 짠 예쁜 옷을 입혀주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가운을 몰랑몰랑 부드러운 니트로 제시함으로써 사물의 딱딱함을 완화시킨다. 본래의 모습을 벗은 속알맹이를 찾아 편안한 옷을 다시 입혀주는 작업이다. 조소희의 작품 <의자-손>은 2008년부터 시작되어 현재에도 진행중인 프로젝트로, 끊임없이 짜내고 만들어내는 시간의 축적과 과정을 보여준다.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길어지기만 하는 손은 욕망의 무한증식을 연상시키지만, 얇고 연약한 실로 짜여진 두 손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축축 처지고 늘어져 의자 밖을 벗어나 바닥에 납작하게 펼쳐진다.
옷은 이렇게 각각의 작품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제 존재를 드러낸다. 입고 벗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들이, 만들고 파는 산업적 맥락을 거치며, ‘나’와 맞닿을 수 있는 초월적 상황으로서의 입고 벗기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적이고, 위트 넘치는, 또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여러 작품의 하모니를 통해, ‘옷-만들고, 팔고, 입고, 벗기’ 너머에 존재할 숨겨진 여러 겹의 옷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순수 예술의 시선에서 바라본 ‘옷’의 조망은 새로이 출범할 섬유패션학부가 밑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창조적 영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영애 (독립기획자, 이안아트컨설팅 대표)
1972년 출생
1959년 전남 순천출생
1981년 서울출생
1966년 출생
1971년 출생
1976년 출생
1974년 서울출생
197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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