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바이러스
2010.03.19 ▶ 2010.04.18
초대일시ㅣ 2010-03-19 17pm
2010.03.19 ▶ 2010.04.18
초대일시ㅣ 2010-03-19 17pm
김병호
A Host aluminum,piezo,arduino duemilanove, 290x180x60(d)cm, 2009
김병호
Collected Silences aluminum,piezo,arduino dimensions, 가변설치, 2010
김병호
Horizontal Intervention aluminum_arduino_piezo, 96x280x25(d)cm, 2010
김병호
Silent Pollen-black urathine coating on aluminum, steel, arduino, piezo, 320x28x18(d)cm, 2010
김병호
Triffid aluminum_arduino_piezo, 276x276x32(d)cm, 2010
Fantastic Virus
바로크 음악을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통주저음(Basso continuo)의 사용이다. 통주저음은 록음악에서 베이스 기타의 연주처럼 드럼이나 일렉트릭 기타에 묻혀 그 음이 드러나지 않지만 곡 전체의 긴장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통주저음이 없다면 바로크 음악이 지닌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통주저음은 실제로 거의 지각되지 않지만, 그 소리 때문에 바로크 음악에는 비트가 존재한다. 이는 마치 바로크 회화의 테네브리즘(Tenebrism)과도 흡사하다. 테네브리즘은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화면의 강렬한 명암대비를 말한다. 바로크의 그림에 존재하는 어두운 배경은 그 자체는 명확한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배경처럼 존재하지만, 오히려 화면 전체의 극적 긴장감을 생산하는 무의식적 바탕이다. 의식에 직접 지각되지 않는 미세한 것들이 오히려 예술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김병호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세지각들로부터 하나의 판타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는 바이러스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 아주 미세한 것들을 모아서(grouping) 매우 세련된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얼핏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나 조형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일상적 사물이나 단순한 조형물이 지닐 수 없는 긴장감이 존재한다. 통주저음처럼 미세한 바이러스들이 끊임없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미세한 꽃가루가 날리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단순히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판타지인 것이다. 그저 하나의 사물이라면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판타지도 성립하지 않는다. 판타지는 언제나 현실 혹은 사물과의 긴장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작품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어떤 것일까? 그의 작품에서 긴장감은 매우 중층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안정되고 세련된 작품의 형상과 작품외부 환경과의 긴장,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긴장, 인위적인 것(artificial)과 예술적인 것(artistic)의 긴장, 제품(product)과 일상품(ready made)과의 긴장 등이 그것이다. 외관상 그의 작품은 매우 세련될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완벽할 만큼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결코 예술적 완성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이 완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제품처럼 보인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는 이러한 역설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잘 들여다보면 이러한 역설은 곧 인위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의 역설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매우 인위적인 것이다. 그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작품의 대체적인 형상을 스케치할 뿐만 아니라, 작품이 정확하게 만들어지기 위한 도면을 제작한다. 그의 작업은 스케치와 도면작업으로 이어지는 디자인 과정과 흡사하다. 그의 작품은 매우 정밀한 부속품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 그는 도면에 따라 부속품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가공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 조립한다. 당연히 그 결과물은 자연물이 아닌 지극히 인위적인 인공물이다. 하지만 그는 인위적인(artificial) 것을 제작할 뿐 예술적인(artistic) 것을 배제한다.
예술적인 것의 배제는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것의 배제와도 관련이 있다. 그는 예술작품을 ‘제작’할 때 주관적인 요소들을 완강히 거부한다. 그것은 형상과 물성의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형상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불필요한 잉여의 요소들을 억제한다. 가령 ‘수평적 개입’(horizontal intervention)의 경우 비스듬한 선이 기하학적 대칭을 이룬다. 이러한 기하학적 대칭과 단순성은 임의적인 요소, 즉 주관적인 요소를 막기 위한 것이다. 임의적인 요소가 첨가될 경우 그것은 하나의 완결된 제품이 아닌 작가의 의도를 담은 주관적인 산물로 보일 것이다. 그 경우 ‘인위적인 것’이 아닌 ‘예술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미니멀리즘을 계승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결코 미니멀리즘 조각의 연장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주관적인 요소의 배제는 재료가 지닌 물성에 대한 충실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의 ‘팍투라’(factura)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당시 철이라는 새로운 건축 재료는 과거의 대리석과 달리 기하학적이고 과학적인 형상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건축 재료로서 철이 지닌 물성은 귀족적이고 낭비적인 취향의 화려한 장식과는 맞지 않는다. 물성에 충실한 새로운 조각과 건축은 지극히 과학적인 것이며, 진보적인 세계관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김병호의 작품도 물성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팍투라의 관행을 따른다. 그는 스테인리스, 황동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경우에도 작가의 의도대로 재료의 물성을 변경하기보다는 스테인리스가 지닌 물성 자체에 가급적 충실하고자 한다.
객관적인 것에 충실한 그의 작업이 만든 결과물은 ‘제품’(product)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디자인 작업과 흡사한 작업을 거친 것이나 주관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모두 제품의 특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역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결코 산업 제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실제로 ‘제품’으로서 그의 작품이 갖는 의미가 단순히 예술작품과의 긴장관계만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이 미술사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레디메이드’(기성품)와의 미묘한 긴장감에서이다. 그의 작품은 흡사 레디메이드처럼 보이지만 결코 레디메이드가 아니다. 말 그대로 ‘레디메이드’는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치밀한 설계에 의해서 제작된 ‘제품’이다. 미술사적으로 레디메이드의 활용이 예술과 일상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데 있었다면, 김병호의 ‘제품’ 제작은 레디메이드가 허물어뜨린 예술과 일상의 긴장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긴장은 단순한 예술적 고민을 넘어선 어떤 사회적 차원을 암시한다. 작가는 ‘제품’의 제작을 통해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엄밀성을 추구한다. 그는 정밀한 기계와도 같은 제품의 제작을 통해서 완성도 높은 조형물을 만들지만, 이러한 완성도 높은 조형물의 탄생은 미시적인 부분들의 안정된 체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를 하나의 인위적인 사물, 즉 제품으로 비유하자면 사회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미시적인 것들의 규범과 체계들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제품은 표준적 규범 혹은 인터페이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체계물이다. 그러한 체계는 미시적인 차원의 개입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바로 바이러스와 같은 미시적인 차원으로부터 인터페이스로서 사회라는 체계를 형성하려는 판타지의 제작인 셈이다.
박영욱(연세대 HK 교수)
1974년 서울출생
제15회 畵歌 《플롯: 풀과 벌의 이야기 Plot: The Story of Wild Grasses and B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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