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풀 라이프 Woder-Pul Life
2017.02.01 ▶ 2017.02.18
2017.02.01 ▶ 2017.02.18
김제민
Usual Suspects 종이에 수성마카, 43x75.6cm, 2016
김제민
무심한 풍경 종이에 목탄, 75x105.5cm, 2016
김제민
사선에서 종이에 목탄, 75x105.5cm, 2016
작가노트(드로잉 단상) – 김제민
원더 풀 라이프 (Wonder-pul Life)
척박한 도시의 곳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풀
우리는 그들을 ‘무단점거자’라 여기지만 어쩌면 본 주인은 그들이고 우리가 불청객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도시의 환경에 적응하며 끈질기게 버티며 살아가는 풀들에게 눈길이 갔다. 딱딱하고 인공적인 지형지물 사이에서 집요하게 자리잡고 주어진 환경에서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풀들은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어떻게든 버티고 살려고 안간힘 쓰는 모양새가 내 모습 같아서 자조적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풀이야말로 자연의 완벽한 드로잉이고, 나는 그저 그것을 따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콘크리트 벽과 아스팔트, 다양한 소재의 인공물을 배경으로 유기적인 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 풀은 마치 종이 위에 자유롭게 그려지는 드로잉의 필선을 닮았다. 인공과 자연은 그렇게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함께 공존한다. 그 생생한 ‘드로잉’의 현장을 내가 다시 드로잉한다. 식물이 고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드로잉은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 도시 속에 자리잡은 풀이 끊임없이 영역과 경계를 넘나드는 것처럼, 나의 드로잉도 영역과 경계의 초월을 지향한다.
여러 상황에 놓인 풀들을 보고 그리면서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근래에는 풀에게 ‘관조자’라는 입장을 부여해 보았다. <춘망(春望)>에서 두보(杜甫)는 나라가 망하니 초목만 우거졌다고 한탄하며 인간사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풀은 비록 한두 해 살고 죽지만 끊임없는 생-사의 순환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영속성을 지니는 반면, 인간 문명은 영원할 듯 보이지만 오히려 자연의 시간 속에서는 찰나에 지나지 않으며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금의 여러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사태들을 접하면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며 비웃고 있을 풀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역시 풀처럼 관망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한다.
197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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