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형태 혹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조각 - 꿈과 기억
김정민은 줄곧 기억과 꿈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시켜왔다. 무의식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의 조각들은 사슴, 돼지, 개, 소파, 상어 등 하나의 맥락으로 정리할 수 없는 형상들을 마치 기억의 파편들을 조합하듯 구축한다. - 물론 대부분의 이미지가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동물들 간의 개연성은 없어 보인다 - 꿈과 기억은 의식의 개입이 차단되거나 최소화 되어있는 영역이라는 점과 그 연상의 방식이 몽타주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건과 사건의 충돌과 개입이 자유로운 꿈과 기억의 세계는 이질적인 이미지들이 상호 결합되면서 알 수 없는 네러티브를 구성한다.
김정민의 조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억과 꿈이 가지는 특징적인 국면을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보여준 형상들은 일견 실재 존재하는 형상들과 유사하지만 작품 상호간의 유사성이나 맥락은 언어화 할 수 가 없다. 그가 보여주는 형상들은 자신의 기억 혹은 꿈의 세계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들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기억의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성찰해 왔던 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에 의하면 '기억'은 '생명'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연속성을 상실하게 되고 연속성의 단절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더 나아가 '기억'은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 되어지며 이들은 무의식이나 의식 속에 깊이 각인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용적이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것들이지만 우리 무의식속에 깊이 담겨져 있는 순수 기억(Pure Memory)((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1896)에서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고찰하며 기억을 둘로 나눈다. 그 하나는 습관적 기억 또는 기계적 기억이며 다른 하나는 자발적 기억 또는 순수기억이다 - 『베르그송연구』 김진성 문학과 지성사 1985. p132에서 재인용))은 실재(The Real)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순수기억(Pure Memory)과 실재(The Real)
작가는 줄곤 존재와 무의식, 꿈과 허구의 문제를 사유해 왔다. "나의 어제를 기억함으로 오늘의 내가 존재하며, 당신의 어제를 기억해 줌으로써 오늘의 당신이 인식된다. '기억'은 의도된 '의식'이라기보다는 의도치 않게 저절로 작동하는 무의식에 가깝다. -중략 - 실체의 본질은 그 주관적 무의식에 덮어져 상실되고 남아있는 건 눈앞에 있는 것들이 어제도 존재했다는 기억뿐이다.(김정민)"
내가 나인 이유는 내가 어제 나로 존재한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김정민의 조각은 앞서 베르그송이 이야기 했던 순수 기억과 연관되어있어 보인다. 오래된 어떤 사물을 통해 기억 속에 잠재했던 사건 혹은 인물을 연상하게 되는 것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이 기억들은 의식 혹은 무의식속에서 불연속적으로 떠오르는 그 무엇이며 그것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기억 속에는 마치 영화의 몽타주기법처럼 분절적인 사태와 사건 혹은 이미지들이 혼성하고 있다.
몽타주(montage)
김정민은 조각난 기억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호명해내면서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인다. 그 형태들은 때로는 동물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지만 의자와 동물이 결합되거나 배설물과 동물이 하나가 되기도 한다. 정교하게 계산되어 조합된 이 이미지들은 마치 자신의 실재를 찾아가듯 기억을 더듬어 간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소파와 방석으로 제시되거나 어느덧 상어가 되어 물속을 유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장면들은 영화의 몽타주 기법처럼 불연속적으로 제시되어있다. 물론 영화에 있어서 몽타주는 사태의 흐름을 더욱 강조하고 네러티브를 더욱 강화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김정민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비언어적이고 분절적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욕망과 휴식, 공격성과 억압 등 다양한 무의식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민의 조각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 혹은 다양한 이미지들은 해석되어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작가는 현실세계에서 언어화 될 수 있는 맥락을 쫒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심연에서 파생되는 기억이나 꿈에서 나타난 이미지 사이를 유영하고 있다. 작가는 기억과 꿈을 사유하며 자신 내부의 심연을 헤메인다. 어쩌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마르셀 푸르스트 『즐거움과 나날 Les plaisirs et les jours』1896 수상집에서)가 말한 것처럼 "인생은 사는 것보다 꿈꾸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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