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당신의 연못에도 이것이 비친다.
윤수정 (협력기획)
이유지아 작가의 작업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기록된 몇몇 영상 작품으로부터 출발한다. 2019년 우란문화재단에서의 《신물지》 전시에서 작가는 충청남도 태안, 제주도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촬영한 영상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무교 전통의 풍경과 상징을 아우르는 당시 작품을 통해 나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장소와 사건을 탐색하고 역사적 기원까지 파악하려는 작가의 관심사를 알 수 있었다. 이후 2년정도 ‘좋은이웃사람’ 그룹 안에서 함께 활동하며, 이 같은 주제 의식을 표현함에 있어서 아카이브라는 작업 방식이 작가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기 이전에 몇몇의 주제에 대해 긴 시간을 들여 다양한 층위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리서치하는 과정을 갖는다.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는 하나의 주제 위에 교차하는 맥락들을 찾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서로 다른 시공간의 텍스트와 이미지를 이어 붙이거나 단절시킨다. 작가는 그렇게 일부러 연결하고 빈틈을 내면서, 굳이 다차원을 점프하는 과정을 거쳐 상상된 새로운 이야기들로 이미지 패널과 스크립트를 구성한다. 작가는 이 능동적인 작업의 과정을 행위하는 아카이브(Performing Archive)로 부르며, 마치 스스로의 인식 속을 탐험하는 여행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1]
이번 캔 파운데이션 오래된 집에서 열린 《Tele-vision》 개인전에서도 작가는 퍼포밍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업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4년 전 알게 된 『삼국유사』에 적힌 창원 백월산 설화를 통해 처음으로 텔레비전이라는 주제를 작업으로서 주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작업의 흐름에 따라 전시는 마찬가지로 설화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장소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보는 텔레비전의 시초와도 같은 이 설화를 이유지아 작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그리고 작가는 ‘텔레비전’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인간이 세계와 타자를 감각하며 소통하는 태도에 대한 무수한 이미지와 이야기들을 길어 올린다.
작가는 다른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는 텔레비전적 행위와 감각에서 현대 무형의 네트워크 장을 떠올렸다. 작가에게 지난 해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은 추상적인 네트워크 개념을 가장 유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기였다.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연결되고, 소통하는 일상의 감각으로부터 작가는 네트워크라는 텔레비전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이자 이미지를 소환한다. 작가는
작가는 이어서 네트워크의 모양만이 아니라 그 속성도 추적한다. 작가가 바라보는 네트워크는 서로 이어졌다가도 끊어진다는 점에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거리감을 속성으로 갖는다. 작가는 이와 같은 감각을
한편, 작가는 네트워크가 하나의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도 퍼포먼스 작업으로 짚는다. 앞서 언급하였듯 작가의 작업은 장시간에 걸친 리서치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수행하였던 주요 리서치들을 배우에 의해 수행되는 퍼포먼스 작업인
이처럼 감각과 연결 사이를 오가며 세계를 이해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금번 개인전에서만이 아닌 기존 작업 속에서 꾸준히 드러난 바 있다. 작가는 2019년 민주인권기념관(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선보인 <말랑말랑한 모듈러>(2019)에서 과거 피해자에게 각인된 냄새의 비누로 공간의 설계도면을 재현하여 전시장에 드로잉 작품 뿐 아니라 과거의 냄새까지 채웠다. 작품에 의해 공감각적으로 재현된 과거의 흔적은 공간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아픔에 동감하고자 하는 작가의 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작가가 집중해오던 동감과 소통이라는 주제를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텔레비전적 감각과 행위들로 다시 풀이하며, 네트워크 개념을 빌어 종합적으로 가시화한다.
작가는 우리가 세계와 시공간의 차원 속에서 뒤죽박죽일지라도 모두 얽혀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들의 세계관에서 알 수 있듯 이유지아 작가에게 시공간은 비선형적인 파노라마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져 있는 점들을 통해 연결되고 순환하며 유동적인 입자 같은 존재가 바로 지금의 우리인 것이다.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Sa’di)의 선언처럼, “모든 아담의 후예는 한 몸을 형성하며 동일한 존재이다. 시간이 고통으로 그 몸의 일부를 괴롭게 할 때 다른 부분들도 고통스러워 한다. 그대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2] 우리는 네트워크 안에서, 혹은 태초부터 모두 서로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유지아 작가가 오래된 집에 펼쳐놓았듯 세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연결을 지향하고, 인류는 텔레비전적 감각과 행위들로 여러 갈래의 세계들을 이어왔다. 이 다양한 차원들을 여행하고 만나는 이야기에 동감하는 일은 이제 각자의 몫이다.
[1] 퍼포밍 아카이브(Performing Archive)는 2019년부터 좋은이웃사람 콜렉티브에서 연구된 아카이브 방법론으로서 독일의 문화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1866-1929)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퍼포밍 아카이브는 아카이브가 단순히 기록하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시공간,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재맥락화되는 행위 자체임을 함의한다.
[2] Sa’di, 1184-1292, manifesto, “The sons of Adam are limbs of each other, having been created of one essence. When the calamity of time affects one limb the other limbs cannot remain at rest. Thou art unworthy to be called by the name of a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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