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국제갤러리 한옥 양혜규 프레젠테이션 《동면 한옥》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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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한옥 양혜규 프레젠테이션 《동면 한옥》 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는 오는 8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양혜규 작가의 프레젠테이션 《동면 한옥》을 진행한다.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 선보이는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본격적인 전시장으로서의 출발을 맞이하기 전 유보적 휴면 상태에 있는 본 공간의 상태를 적극 반영한다.
지난 2006년 8월, 양혜규는 인천의 한 민가에서 국내에서의 첫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선보였다. 인천이라는 서울의 위성도시, 그 중에서도 서해 연안 부두에 인접한 사동의 한 폐가에서 열린 이 전시는 여전히 다수의 미술인에 의해 기억되고 회자된다.
당시 작품이라 하기에는 미미한 요소들이 곳곳에 설치된 이 《사동 30번지》 전시를 위해 거쳐야 했던 기초적인 준비를, 작가는 스스로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청소한다’는 행위와 ‘전기를 연결한다’는 행위다. 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이곳은 주변에서 내다 버린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고, 전기와 수도는 끊긴 지 오래였다. 청소와 전기 문제가 해결된 후, 작가는 드디어 ‘유령 같은’ 삶을 상징하는 장치들을 삽입하기 시작했다. 깨진 거울, 조명기기, 벽걸이 시계, 종이접기로 만든 오브제, 형광 안료 등의 미미한 장치가 등장했다. 빨래가 없음에도 천으로 덮인 건조대가 펼쳐져 안방에 자리했고, 스트로보스코프 앞에 놓인 구형 선풍기는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회전했으며, 장독대가 있던 자리에는 전망대가 들어섰다. 관객은 전망대에 놓인 아이스박스에 든 생수를 직접 마시거나, 이를 이용해 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야외 수도가에 심어진 봉숭아와 국화에 물을 줄 수도 있었다. 이 전시에 처음 등장한 빨래 건조대와 링겔대는 이후 양혜규 작가의 조각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오브제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에는 비미술적인 재료와 낯선 오브제 여럿이 집 곳곳에 생소하다 못해 매우 낯선 환경을 조성하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이 이질적인 요소들을 모두 아우른 건 오랜 세월에 취약해진 낡은 가옥이었다.
이렇듯 확립되지 않은 여러 요소가 성긴 구성을 이루었던 《사동 30번지》에 비해 《동면 한옥》은 상대적으로 정립된 환경 속 보다 어엿한 작품의 형태를 갖춘 작업을 선보인다. 하지만 천장 조명을 마다하고, 야간에도 손전등을 의존하는 전시의 연출 방식은 어딘가 모르게 《사동 30번지》를 연상시킨다. 이와 같은 장소성은 물론, 시공 중인 한옥이라는 이 장소가 지닌 고유한 시간성은 켜켜이 쌓인 시간들과 더불어 과도기적 연상을 자아낸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 작가는 제목의 '동면'이 주는 느낌을 전시 연출의 주된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객을 가장 먼저 자극하는 것은 여러 한약재 냄새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전기 양초들이다. 한옥의 어느 구석에는 조각이 방치된 듯 바닥에 늘어져 있고, 또 다른 구석에는 저장용 항아리나 가마니처럼 조각 작업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비교적 협소한 한옥 공간 내부에 높은 밀도로 전시된 작품들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제작 시기도 모두 상이하다.
전면 유리로 된 전시 입구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광원 조각 〈토템 로봇〉(2010)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인조 짚을 주재료로 직조한 〈중간 유형〉 연작(2015-)의 하나인 〈중간 유형 – 서리 맞은 다산의 오발 이무기〉(2020)와 만난다. 생명체의 머리가 바닥에서 들린 형국의 이 작품은 이제 막 상승하려는 건지, 아님 막 내려앉은 듯한 모습인지 알 수 없다. 한 팔은 먼 대들보 위에 걸쳐져 있고, 몸통 밑으로는 방울 촉수가 드리운다. 바닥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전설 속 이무기를 연상시키는 이 신비한 생물체를 지나면 작가의 신작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제작된 〈소리나는 행성 주머니 – 홍예 식물 지도〉(2023)를 마주하게 된다. 거대한 벌집이나 열매를 연상시키는 이 매혹적인 생명체는 무지개빛 방울을 가득 단 몸체에 해저, 사막, 열대 등의 지역을 테마화하는 인조 식물을 담은 주머니로 구성되어 인공물과 자연을 동시에 아우른다.
벽에 설치된 흑경 조각 〈칠흑같이 회전하고 반사하며 흐르는 검은 큐브형 수도꼭지 – 비늘 굴린 정사각형 #17〉(2023)을 지나면, 〈중간 유형〉 연작 중에서도 덩치 큰 조각들이 꽉 들어찬, 상대적으로 침침한 뒤편의 공간을 맞이한다. 금속 방울로 덮인 회전 가능한 반구에 수도꼭지 손잡이를 부착한 근작 〈소리 나는 돌림 무엇이든 흐름 반구 #22〉(2022)와 빨래 건조대를 뼈대 삼아 방울로 감싸고, 표현할 수 있는 형태의 모든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자 진행 중인 연작 〈소리 나는 접이식 건조대 – 마장 마술〉(2020) 등 다채로운 작품으로 그득한 이 공간은 빈틈없이 채워졌으나 어딘가 모르게 시간마저 저장된 듯한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 관객의 시선은 그 공간 한편에 위치한 창문을 통해 한옥 뒤뜰에 나무를 감싸고 있는 〈중간 유형 – 탄소 맞은 수컷 칠발 이무기〉(2023)와 마주친다
입구에서 반대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기존에 전시장으로 사용되었기에 비교적 잘 정돈된 공간을 맞이한다. 이곳에는 조각 외에도 작가가 근 10여 년 동안 꾸준히 제작해온 모노프린트를 이용한 판화 작업과 함께 의도적인 구성 외에도 우연히 표면에 앉은 빗방울, 먼지, 꽃가루, 벌레 등의 환경적 요소를 포함하는 〈래커 회화〉 연작,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지역의 여행 중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생생히 감각한 울퉁불퉁한 길의 지형과 이동의 과정을 추상적, 비문자적으로 기록한 〈멀미 드로잉〉 연작 등이 소개된다. 이와 함께 민속성과 수공예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조각 〈검정 속내 두발 희부연이〉(2015)와 무속 전통에서 사용되는 종이 무구들에 영감 받은 〈황홀망〉 연작을 접이식 목재 병풍으로 제작한 〈황홀두폭병恍惚二幅屛 – 방언 충천 춘하春夏 기수도 #3〉(2022)가 나란히 선보인다.
중정의 처마 곳곳에는 종이를 접어 오린 후 다시 펼쳐 종이 무구를 만드는 무속 전통인 ‘설위설경設位設經’에 영감 받은 황홀망 오브제 3점이 소개되며, 처마 밑 서까래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지상에서의 위기 상황을 모면하는 남매를 그린 한국의 전통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부터 영감 받은 설치작 〈소리나는 동아줄〉(2023)이 걸려있다.
양혜규 작가는 전시장의 건축 혹은 위치성이 비단 깔끔하게 정리되어 작업을 진열할 수 있는 중성적인 장소 이상, 즉 곳곳에 배치되는 작품을 통해 고유한 장소성과 시간성을 품을 수 있는 여지를 희망한다. 또한 《동면 한옥》을 구성하고 있는 작품들이 비수기의 풍경이나 무대를 벗어난 배우처럼 보다 자연스러운 상태로 관람객을 마주하기를 바란다.
*《동면 한옥》은 서울 '프리즈 위크' 기간(9월 4일-9일)에 한해 개관 시간을 밤 8시까지 연장한다. 또한 9월 7일(목)에는 ‘삼청 나이트’를 기념하여 밤 12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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